마이클잭슨은 ‘팝의 황제’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다 설명이 안 되는 인물입니다.
문워크, 스릴러, 빌리진 등의 명곡을 탄생시킨 팝스타이죠.
그의 이름 석 자가 등장하는 순간 세대를 초월한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그런데 팬이라면 한 번쯤 궁금했을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피부가 왜 그렇게 하얗게 됐는지, 코는 왜 그토록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 갑작스러운 죽음의 진실은 무엇인지.
이 글에서는 덕후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마이클 잭슨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했습니다.
마이클 잭슨 기본 프로필 – 마이클 잭슨 키와 신체 정보

출처: 더쿠
마이클 잭슨의 본명은 마이클 조셉 잭슨(Michael Joseph Jackson)입니다.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 주 개리에서 10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습니다.
부검 보고서에 기재된 마이클 잭슨 키는 175cm(69인치), 사망 당시 체중은 61kg으로 확인됐습니다.
경향신문은 당시 의학박사의 말을 인용해 “골격에 비해 굉장한 저체중 상태”라고 보도했습니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아티스트로 등재됐습니다.
정규 앨범 Thriller는 6600만 장 이상 팔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기록을 보유하고 있죠.
음악, 춤, 패션 모든 면에서 20세기 대중문화의 기준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마이클잭슨 백반증 – 피부가 하얘진 진짜 이유

사진 출처 (christiantoday)
마이클잭슨 백반증은 그에게 평생 따라붙은 오해와 고통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백반증은 피부에서 멜라닌 색소가 점점 사라지면서 흰 반점이 생기는 자가면역 질환입니다.
마이클 잭슨은 1993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스스로 백반증 환자임을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진행된 부검에서도 백반증이 공식 확인됐습니다.
백반증이 급속히 악화된 계기는 1984년 펩시 광고 촬영 사고였습니다.
촬영 중 무대 폭죽이 잘못 터져 머리에 3도 화상을 입은 것입니다.
백반증 환자가 피부에 강한 자극을 받으면 증상이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이 사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1980년대까지는 일반 파운데이션으로 가릴 수 있었으나, 이후 백반이 너무 넓게 퍼져 커버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마이클 잭슨 성형 코 – 코 성형의 시작과 변화

사진 출처 (ilyo)
마이클 잭슨 성형 코 이야기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언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 조지프는 마이클에게 “큰 코를 갖고 있으며 그런 얼굴은 내 유전자에서 온 것이 아니다”라고 공개 모욕을 했습니다.
이 말은 마이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고, 외모에 대한 깊은 컴플렉스로 이어졌습니다.
영상 출처 (궁금소)
코 성형의 직접적 계기는 1979년이었습니다.
영화 The Wiz 촬영 중 복잡한 안무를 추다 넘어져 코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처음 코 성형을 받게 됩니다.
출처: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그러나 첫 수술은 성공적이지 않았고 호흡 곤란이라는 후유증까지 발생했습니다.
이후 의사 스티븐 호플린을 찾아 코 성형을 다시 받았습니다.
마이클 잭슨 본인이 자서전 Moonwalk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형은 코 수술 2회와 턱에 홈을 파는 수술 1회, 총 3번입니다.
하지만 사후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는 더 많은 수술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이클 잭슨 대머리 – 탈모와 화상, 그리고 가발

사진 출처 (oopldh)
마이클 잭슨 대머리 이야기는 1984년 펩시 화상 사고와 직결됩니다.
촬영 현장에서 머리에 3도 화상을 입은 이후 두피 손상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기존 두피를 팽창시켜 상처를 막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이 수술의 후유증이 심각했는지 이후 오랫동안 진통제를 복용했습니다.
헤어스타일이 특유의 곱슬머리에서 직모로 바뀐 것도 두피 손상 이후 가발을 착용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사후 공개된 부검 보고서는 이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사진 출처 (joongang)
보고서에 따르면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하고 가발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앞머리 부분에는 탈모가 진행돼 있었습니다.
두피 앞쪽 절반은 검게 문신된 것으로도 확인됐습니다.
이는 백반증으로 탈색된 두피를 가리기 위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라이브 퍼포먼스에서는 자연스러운 머리카락이 보였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가발을 착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이클잭슨 자녀 – 세 명의 아이들

사진 출처 (asiae)
마이클 잭슨 자녀는 총 세 명입니다.
첫째 마이클 조셉 잭슨 주니어(프린스)는 두 번째 아내 데비 로우 사이에서 1997년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달리 춤과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고백하며,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둘째는 패리스 마이클 캐서린 잭슨으로 1998년생입니다.
출처: 행복한옷장
아버지가 HIStory 월드 투어 중 파리에 머물던 시절 데비 로우와의 사이에서 태어나 이름이 패리스가 됐습니다.
세 자녀 중 유일하게 연예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인물로, 배우와 모델로 알려져 있습니다.
셋째는 프린스 마이클 잭슨 2세로 2002년 대리모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생모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가장 힘들게 받아들인 자녀로, 2015년 이름을 비기(Bigi)로 바꾸고 영화 감독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 사망 정보

사진 출처 (joongang)
마이클 잭슨 사망 정보를 정확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망일은 2009년 6월 25일입니다.
장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홈비 힐스 인근 노스캐롤우드 드라이브에 위치한 자택이었습니다.
향년은 50세로, 공식 사인은 프로포폴과 벤조디아제핀 급성 중독으로 인한 심장 정지입니다.
당일 오후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가 맥박이 약한 채 숨을 쉬지 않는 마이클을 발견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습니다.
오후 12시 22분 911에 신고가 접수됐고, 인근 로널드 레이건 UCLA 메디컬 센터로 이송됐습니다.
오후 2시 26분 병원 측이 공식 사망을 발표했습니다.
7월 7일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대규모 추도식이 열렸고, 사망 70일 만인 9월 3일 글렌데일 포리스트론 공원묘지에 안장됐습니다.
마이클 잭슨 사망 원인 – 타살 판정과 콘래드 머레이
마이클 잭슨 사망 원인은 단순한 과실이 아니었습니다.
2009년 8월 28일 LA 카운티 검시관은 사망을 공식적으로 타살(Homicide)로 결론지었습니다.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가 불면증에 시달리던 마이클에게 수면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매일 주사했는데, 이것이 사망의 원인이었습니다.
마이클은 프로포폴을 ‘우유’라는 애칭으로 부를 만큼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머레이는 법정에서 2.5ml만 투약했다고 주장했으나, 현장에서는 이미 다 비워진 100ml 프로포폴 병이 발견됐습니다.
911 신고와 이송 과정에는 약 1시간 30분의 공백이 존재했죠.
그 사이 머레이가 여자친구와 지인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습니다.
2011년 머레이는 과실치사죄로 4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년 복역 후 석방됐습니다.
딸 패리스 잭슨은 지금도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죠.
마이클 잭슨 사망 직전 – This Is It과 마지막 나날들
출처: 달빛부부
마이클 잭슨 사망 직전에는 오랜 공백을 깨고 복귀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This Is It 콘서트 투어가 그 무대였습니다.
처음 10회 공연으로 계획됐으나 이후 런던 O2 아레나에서 총 50회로 확대됐습니다.
7천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절박함도 컴백 결심에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망 직전 부검 보고서는 탈모와 저체중, 전신에 퍼진 백반증과 문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루푸스 합병증으로 구강 내부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었죠.
글을 마치며
마이클잭슨의 삶을 한 줄로 요약하면, 오해와 진실이 평생 뒤엉킨 삶이었습니다.
피부가 하얗게 변한 것은 백반증이었고, 코가 달라진 것은 아버지의 폭언이 남긴 상처였습니다.
대머리 의혹의 뒤에는 펩시 촬영 현장의 화상 사고가 있었고, 성형 중독이라는 낙인 아래에는 신체이형장애라는 진단이 있었습니다.
천문학적 재산의 이면에는 7천억 원의 부채와 복귀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이 공존했죠.
죽음조차도 단순한 과실이 아닌 타살로 결론 났고, 그 진상은 지금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팬들이 루머에 분노했던 이유는 그에 관한 오해 하나하나가 실제 고통이었던 한 인간의 삶을 지워버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이클 잭슨은 무대 위에서는 완벽한 존재였지만, 무대 밖에서는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 상처까지 이해하는 것이 팬으로서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방법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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